고대 상형문자의 세계는 참 흥미롭다. 그 안에 역사와 생활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 성은 강인데 이는 원래 강족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강은 양과 인이 합쳐진 글자로 양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이들, 즉 목축을 주요 수단으로 살아간 종족들을 가리킨다. 비록 내가 강족의 후예는 아닐지라도, 그 흔적이 이름에 남아 있음으로 인해 묘한 역사적 연속성을 느끼게 해준다.
책은 한자로 서라고도 쓰지만 책이라고도 쓴다. '무서록'의 작가 이태준은 "책은 冊이라고 써야 책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이 한자가 대나무에 글을 써서 엮은 죽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지식이었다. 죽간이 역사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 거북 복갑이나 소 견갑에 글을 새기던 시절에 책이라는 글자가 이미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갑골문에서 冊은 아주 잔인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령 "책강일인"이라는 구절은 "강족 1명의 살을 저며 바쳤다"라는 뜻이다. 고대 상나라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북쪽 변방의 강족 포로를 잡아와 죽인 다음 살을 최처럼 떠서 제사상에 올렸다. 강족 포로를 잡는 일을 가장 잘했던 이가 주나라 문왕이다. 문왕이 속한 주족은 상나라 상족의 하수인 같은 존재였다. 인신공양의 종료를 가지고 있었던 상나라에 강족 포로를 바치고 세력을 키워 결국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주족의 주(周)는 밭이 생긴 모양을 모방하여 만든 글자다. 주족은 농경을 위주로 한 종족이다. 그래서 주족은 자신들의 전설적 시조인 후직을 농경의 신으로 만들었다.
중국 상형문자는 사실 상족의 글자다. 주족과 강족은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이 글자들은 상족을 중심을 이해해야 한다. 남쪽 남의 상형문자는 나무가 위에 있고 배가 아래에 있는 형상인데 상족 입장에서 자신들이 거주하던 중국 중부 내륙의 남쪽은 수목이 번성하고 강이 많아 살아가는데 배가 필요한 곳이었다. 북쪽 북은 상형문자에서는 방위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먼곳으로 떠난다"는 의미였다. 상족에게 북방을 간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고향을 떠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형문자의 세계는 또 살벌하기도 하다. 앞에서 책이라는 글자도 그렇지만 인신공양 제사의 과정에서 많은 상형문자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정벌이라고 할 때 쓰는 벌은 창으로 사람을 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두 사람 이상을 칠 때는 섬이라고 썼다. 전쟁에서 상대방을 다 쓸어버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섬멸이란 단어의 섬(殲)에는 상형문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직업 직(職)은 상형문자에서 '기다린다'는 의미였다. 그 자형을 보면 창에 돌을 더한 것으로 창날을 돌에 갈아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날카롭게 창을 벼리는 이유는 포로를 쳐죽이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자체는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갑골복사에 자주 나타나는 문장은 "기다려라, 걱정하지 말고"라는 의미다. 여기서 직무의 직이 파생됐는데 직무 자체도 명령을 기다리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창을 의미하는 과는 무수한 글자에 활용되었다. 나 아, 나이 세, 의로울 의, 모두 함, 이룰 성에도 모두 창이 들어 있다. 이들은 갑골문에 원형의 형태가 보존돼 있는데 정확한 본래의 의미는 오늘날의 학자들도 모른다. 하지만 살육과 정벌에 관련된 내용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왕의 상형문자는 전투용 도끼의 칼날 부분을 형상화한 것으로, 군사 정벌은 왕이 전유하는 권력임을 상징했다. 가르칠 교는 상형문자에서 손이 몽둥이 하나를 들고 있는 모양, 풀줄기를 들고 숫자를 계산하는 모양, 마지막으로 어린이가 합쳐진 것으로, 두드려 패 가면서 산수를 가르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상형문자의 기원은 인류 초기 문명의 부정할 수 없는 잔인함과 야만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문자는 문명화 과정에서 자신의 야만적 기원을 자획을 더하는 방식으로 지워나갔다. 피비린내 나는 제사가 차례로 바뀌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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